역사를 알고싶다는 내 궁금증은 이전부터 계속 설명한 바 있다. 지난 번 읽었던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를 읽었을 때내가 알고싶지 않은 정보를 마구 얻었을 때에도 지루한 와중에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책 역시 예전부터 고대하던 책이기도 하고 내가 실제로 자주 찾는 프로그램과 같은 제목의 같은 제작팀이 쓴 글이기에 별 고민없이 선택할 수 있었고, 책을 중반까지 읽은 지금도 각 잡고 책 표지를 넘기려 할 때면 알 수없는 설렘이 내 몸을 감싼다.
1. 그리스 신화에서 보는 역사
-그리스 신화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 전에 애초에 역사 속 사건을 다루는 책에서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에 약간 놀랍고 실망스러웠었다. 그러나 이 신화의 내용이 이미 수순대로 흘러간 역사를 더 정당화하고 과장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것을 이 책에 나오는 예시들을 보고 알게 된 순간 생긴 신화에 대한 흥미는 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었다.
-신들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간, 헤라클레스: 가장 감명깊게 본 신화속 내용은 스파르타의 헤라클레스에 대한 내용이었다. 올림포스 신과 괴물 기가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승리하기 위해선 한 인간이 필요하다는 예언이 내려오자 제우스는 페르세우스의 손자 암피트리온의 아내를 임신시켜 헤라클레스를 탄생시키고 헤라의 젖을 물려 영생을 얻게 했다.
-그렇게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엄청난 질투를 얻게 되고 헤라는 그를 미치게 만드는 광기를 보내 헤라클레스의 가족을 모두 죽이게 만든다. 겨우 정신을 차린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죗값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죄책감을 가질 때 홀연히 한 남자가 나타나 그를 다독이고 제대로 된 삶을 살게끔 도와주는데, 그가 바로 아테네의 테세우스이다.
-이 둘의 만남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치열한 경쟁을 생각하면 로마제국으로 이어졌던 아테네의 문화,역사가들을 생각해보라. 헤라클레스가 죄를 짓고, 그로인해 좌절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스파르타를 깎아내리고,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를 도와주는 장면을 넣어 아테네인의 우월함을 부각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그리스 신화 속에는 실제 역사를 반영하거나, 역사가 흘러간대로 맞춰가기위해 다소 황당한 전개를 넣기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면들이 신화가 오직 두루뭉실한 이야기가 아닌 느낌이라 뭔가 더 독자를 재밌게 하는 것 같다.
2. 페스트로 보는 역사
-1347년 한 척의 배가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들어온다. 주인 없는 배처럼 음산해 보여 경계하고 안을 들여다본 선원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배 안에는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달걀 크기의 종기로 가득한 선원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배에 탄 선원들은 신체 일부가 검게 썩어들어가며 고통스럽게 죽어간다고 해서 '검은 죽음'이라 불리는 흑사병에 걸렸던 것이다.
-유럽의 페스트는 정말 어마어마한 속도로 퍼져나갔다. 대략 하루에 1.6km의 속도로 교역로로 퍼진 페스트는 중세 유럽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처음 페스트는 크림반도를 침략하기 위해 군사를 모았던 몽골군에서부터 발생했다. 전세가 유럽쪽으로 기울자 몽골군은 페스트에 감염된 시체를 투석기로 던지기 시작했고 그 후 시작된 감염을 피하기위해 배를 타고 움직이던 선원을 따라 확산되기 시작했다.
-페스트에 걸린 쥐벼룩이 쥐를 물고, 그 쥐가 인간을 물어 퍼지기 시작한 이 전염병은 심각한 기근으로 유발된 유럽의 좋지 않은 영양상태, 화장실이 극히 드물어 성 안 창문을 통해 볼일을 보던 심각한 도시 위생상태, 맨 몸을 쥐악시하여 목욕을 살면서 한번도 하지 않고 손조차도 씻지않던 개인위생으로 더욱 더 확산되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건 '페스트로 인해 바뀐것' 이다. 페스트를 신의 형벌로 여기고 집회를 강화하던 종교 행사가 오히려 감염을 확산시키고, 가장 성스러울 줄 알았던 성직자가 힘없이 병에 쓰러지자 사람들의 신앙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갈라진 신앙심의 빈틈은 훗날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
-또한 끊임없이 도망갔던 귀족들과 달리 도망갈 곳이 없었던 농민들이 떼로 죽어나가자, 17세기의 유럽은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이 가장 귀중한 자원이자 나라의 경제 그 자체가 되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농민에 대한 임금이 올라가자 소작농과 자작농이 생기고 돈을 벌어 부를 쌓은 농민이 늘어나 봉건제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이다. 본래 유럽의 중심은 오로지 '신'이었으나 페스트를 거치며 자연에 대해 파악하고 인간 본위의 사고를 시작했다. 이렇게 발전한 인간 중심의 사고는 정치,과학,예술 등에서 부흥을 만들게 된다. 결국 '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는 사상이 자리잡혔고, 관찰과 분석을 중요하게 여기는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다. 200년 넘게 유럽을 괴롭혔던 페스트는 유럽 이래로 가장 큰 부흥인 르네상스시대를 맞게 하는 밑바탕이 된 셈이다.
-아직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등 너무나도 재밌는 내용들이 많지만 요즈음에는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너무 아쉽다. 기회만 된다면 이 책을 다시 빌려서 끝부분까지 읽고 벌거벗은 세계사 후반부를 다루는 글을 작성하고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