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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 프로젝트 1탄 : 질문이 없어진 우리.

조금의행복 2025. 3. 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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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게 큰 시사점을 제시하는 꽤나 아픈 영상이 있다. 바로 2009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속 오바마의 발언이다.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우리나라 기자들을 위해 질문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주었음에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 그 기회는 중국 기자들에게 돌아갔었다. 

 

https://youtu.be/yAjLNefiIGc?si=0e3ox_96bMOKIZ-V

 

- 정말 부끄러운 영상이다. 그러나 저렇게 서로가 민망해지는 침묵의 현장이 한국 기자들만의 문제냐고 한다면 단연 아닐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질문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단순히 궁금증을 해소하는 용도를 넘어 남들이 나를 주목하게 만들고 선생님까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 수업 중 질문이 떠오르면 이 질문을 해도 좋을지 계속 생각하면서 점점 심장이 떨렸고, 그 감정을 즐겼다. 분명 중학교 때까지는 나에게도 그랬던 때가 있었다. 내 생각엔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그런 감정이 요원해졌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하기에 우리 반은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대답 안하는', '조용한' 반이었다. 

 

- 분명 처음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오며 굉장히 중요해진 내신의 성적과 산적한 공부량으로 말 수가 줄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의 '분위기' 라는 것이 자라났다. 그리고 그 이후 아무도 그러한 분위기에 흠집을 내고 싶어하지 않았고 우리는 틀릴까봐, 어려워서, 피곤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말수를 줄여갔다. 

 

- 학년이 바뀐 뒤 새로운 반에 온 나는 무언가 바뀐 분위기를 반과 내 자신에게 기대했다. 그러나 비단 우리 반만의 문제일 줄 알았던 침묵은 반이 바뀌고도 여전했다. 아니, 이전 반은 그래도 참여는 하지만 질문은 하지않는 반이었다면 바뀐 반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조는 반으로 바뀐 것 같았다. 

 

- 이제와서 보면 고등학교 3년의 시간동안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묻어가는 법', '침묵하는 법'을 학습한게 아닐까 싶다. 수업은 점점 더 강의식, 주입식으로 바뀌어갔고, 수업의 변화는 활발했던 학생을 3년만에 숫기없는 학생으로 바꾸기 충분했다. 

 

- 그러한 3년의 변화를 피할 수 있는 고등학교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 상태로 우리는 대학에 진학했다. 콩 심은데엔 콩이 나고 팥 심은데엔 팥이 난다. 입학을 조건으로 학생들에게 침묵을 심은 대학교는 그 대가로 조용한 강의실을 받아야했다. 물론 교수님은 말을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필기를 하고, 중간중간 교수님의 자료를 사진을 찍을 뿐, 질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 물론 수업이 끝나고 따로 교수님께 가서 질문하는 학생은 있다. 하지만 수업 중에는 절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업의 흐름을 끊는, 자신의 무지를 밝히는 행동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자랐기 때문이다. 어떤 교수님은 질문을 한 사람에게 커피 상품권을 주기도 한다. 가벼운 질문이어도 좋으니 물어보라고 권하고 학생은 용기를 내어 손을 든다. 

 

 


 

 

- 책 38p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한국 학생들의 특징은 아이인 채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영미권 학생들은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스스로 학습 계획을 세워 지식을 찾고,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훈련 과정을 통해 '어른' 이 되어 대학에 입학한다. 반면 한국 학생들은 학교나 학원이 퍼주는 지식을 받기만 하다 여전히 '아이' 인 채로 대학에 진학한다. 

 

- 남들이 주는 지식을 학습한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원래 교육이 그런 것 아닌가.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도전하느냐 도전하는 것을 피하느냐의 차이는 질문에 유무에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런 점에서 나는 내 자신을 '갓난 아기' 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어릴 적에는 뭐든 질문하고 반박하고 싶어했다. 간단한 예시로 어른이랑 밥을 먹을 때 왜 먼저 밥 숟가락을 뜨면 안되는지를 어머니께 질문하면 어머니는 그게 예의인거다 라고 답변했다. 나는 아직도 의문이 가시지 않아 '어른들은 먼저 밥을 먹으면 기분이 상하나?' 하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 이후 살다보니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 같아 나도 더 이상의 질문 도전을 멈추었다. 

 

- 학교에서 궁금한 것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질문하는 것을 좋아했다. 질문하는 것 자체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것을 느끼고 눈치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학생이 된 지금은 수업이 진행중일때에 아예 질문이 떠오르지 않게 되어버렸다. 억지로 질문을 생각하려고 해도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을 물어볼까봐 머릿속에서 폐기시켜 버린다. 

 

- 대학생의 나는 내 어린 시절에 비해 문제를 피해버리는 갓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왜?' 라는 물음이 있을 때 배움에 힘이 생긴다.' 책 239p에서 찾을 수 있는 표현이다. 공부는 '왜?' 라는 질문을 가지고 배움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질문은 스스로 배움을 얻으려고 하는 의지가 있고 배움의 과정에 적극 참여할 때 생긴다. 

 

- 이 책을 완독한 지금, 나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해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일주일동안 참여하는 모든 수업에서 적어도 한번 씩은 질문을 해보고 그 질문 자체, 교수님의 반응과 답변, 그리고 주위 학생들의 반응을 적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2탄으로 그 내용을 내 소감과 함께 저술해보고자 한다. 

 

- 질문은 단순히 궁금한 것을 묻는 과정이 아니다. 아는 것이 있어야 질문할 수 있듯이 그 과목과 수업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괜찮은 질문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다가올 일주일에는 수업 전날 해당 과목의 예, 복습 시간이 30분씩은 필요할 것으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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